“하나님 우리가 꼭 이렇게 까지, 정말 이렇게 까지 벧엘비전선교센타를 해야 합니까?”
“정말 이 길 말고는 다른 길은 없습니까?” 참 막막했습니다. 있는 것이라곤
오직 “민족으로, 세계로, 열방으로” 주님이 주신 비전뿐이었습니다.
오직 우리 시대 예배를 살려 이곳이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 하나님께 기도했던 미스바가 되고자 하는 소망뿐이었습니다.
오직 우리 시대 이곳이 엘리야가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 머뭇거리던 백성을 꾸짖고 하나님으로부터 불을 끌어 내리던
갈멜산이 되고자 하는 바램뿐이었습니다.
오직 우리 시대 이곳이 모세가 홀로 40일 금식하여 마침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가슴에 품고 내려온 시내산이 되길 기도했습니다.
오직 우리 시대 120명 주님의 제자들이 모여 합심으로 기도하여 소망 없는 이 땅에 성령의 불과 성 령의 바람으로 교회의 시대,
사도행전의 시대를 열었던 마가의 다락방이 되길 꿈꾸었습니다.
오직 이 비전, 오직 이 소망, 오직 이 바램, 오직 이 기도 그리고 오직 이 꿈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주님께 붙잡혀 이곳까지 왔는데 “주님 이제 자신이 없습니다. 주님 더 이상 힘이 없습니다.
주님 정말 이 길 밖에 없는지, 정말 꼭 이렇게 까지 이 길을 걸어야 되는지 답을 듣고 싶습니다.”
2013년 그렇게 주님 앞에 벧엘비전선교센타 건축을 앞두고 주님 앞에 메달렸습니다.
그때 우연히 교계 신문에서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미국에 있는 이민 개척교회를 하는 젊은 목사님들과 목회 세미나를 가졌는데 한 젊은 목사님이 저와 똑같은 고민을 목사님께 울면서 질문을 한 것입니다.
“목사님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합니까? 십자가가 저렇게 높은데 우리가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이민 목회에 지친 젊은 목사님의 고백이었습니다.
그 질문을 받은 강사 목사님께서 눈에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우리 목회의 동기와 출발점이 내가 아니고 그분이 된다고 하면 이렇게 까지라도 해야 하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이 길 외에 어떤 길을 가겠습니까 하고 물어야 합니다.”
저는 그날 그 목사님의 말씀이 우리 벧엘비전선교센타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렸습니다.
“벧엘비전선교센타가 가는 길이 이 길 말고 다른 길이 없습니까? 꼭 이 힘든 길을 가야 합니까?”라고 묻는 내게 하나님은
“생명을 전하는 이 길 외에 벧엘비전선교센타가 어떤 길을 가고자 하느냐?
벧엘의 예배와 선교의 동기가 너 자신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면 도대체 내가 주는 이 생명의 길 외에 어떤 길을 가고자 하느냐?”
우리 벧엘비전선교센타는 예배와 선교, 그리고 설립과 운영 그 모든 것의 동기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곳입니다. 누구나 이런 말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이 말대로 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래 전 손양원 목사님께서 신사 참배를 거부하여 감옥에 갇혀 지낼 때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기도를 쓰셨습니다.
우리 벧엘비전선교센타는 우리 시대 우리가 겪는 모든 아픔 속에
하나님이 숨겨 놓으신 보물이 있음을 알고 무릎으로 찾아가는 곳입니다.